생활 속에서 피어난 예술
vol.4
지우개로 지운 그림이 조각으로 태어나다
이리에 사야, 히로시마
2016.10.19
사진: 나카사이 지야
지우개 찌꺼기를 가지고 입체 조각상을 만든다. 그것뿐이면 놀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우개로 지운 그림을, 그 찌꺼기만 가지고 입체 조각상으로 재현한다면? 지우개 찌꺼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리에 사야 씨가 작품에 담겨 있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2차원에서 3차원의 것을 만들고 싶다
족자에 그려져 있던 감과 새를 지워서 만든 작품.
사진: 나카사이 지야
대학에서는 예술학부에서 입체조형을 전공했습니다. 예술학부라 그림을 전공하는 사람도 많아요. 졸업작품을 만들 때 그 두 가지, 그러니까 2차원과 3차원을 아우르는 작품을 할 수는 없을까, 그림으로 그려진 것을 입체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막 구겨 보기도 하고, 수건의 올을 풀어서 그 도안과 똑같은 입체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랬지요. 이 수건 작업 과정이 지우개 찌꺼기 아트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수건에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수건의 올을 풀고 그 실을 뭉쳐서 호랑이를 만드는 거지요. 그건 그것대로 좋았지만, 다른 소재로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은 광고지를 지우개로 지워 봤어요. 그랬더니 파란색을 지우니까 파란색 찌꺼기나 나왔습니다. 이거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 해 보자 싶었지요.
종이에서 인물이 나타나다
책의 삽화 속 인물을 작품으로.
사진: 나카사이 지야
먼저 처음에는 슈퍼마켓 광고지의 빨간색 글자를 지워서 거기서 나온 지우개 찌꺼기를 뭉쳐 봤습니다. 거기서부터 조금씩 지우는 범위를 넓혀 가다가, 작품으로서 제대로 만든 건 졸업작품이 처음이었어요.
그게 지폐로 만든 작품입니다. 지폐에 인쇄된 초상화를 지우고, 그 찌꺼기로 그 인물의 입체상을 만들었어요. 인물을 지울 때 나온 찌꺼기만 사용합니다. 착색도 하지 않고요. 지폐를 선택한 것은 보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워졌을 때 깜짝 놀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지요. 돈에 있는 그림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하잖아요. 그리고 지폐의 초상화를 지워 가치를 없앤 후, 미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매깁니다. 어떤 한 가치에서 다른 가치로의 전환이라는 콘셉트였지요.
실은 전시회 때, 일본은행에서 사람이 와서 위법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 있었어요. 법률위반이 아니어서 괜찮았지만요. (웃음)
시대를 지나 계속되는 생명을 표현하다
광고지의 연어 사진을 지워서 만든 입체 연어를 그릇에 담았다.
사진: 나카사이 지야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 전공을 현대미술로 바꾸었습니다. 학부에서 입체조형을 할 때는 생활용품 디자인을 했는데, 제품화를 하기보다는 좀 더 콘셉트가 분명한 것을 만들어 작품으로 판매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거든요. 그때 미국 작가인 톰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두통약인 아스피린에 사람의 형상을 조각한다든지, 머리카락을 가지고 진짜 같은 파리를 만드는 그런 작업을 합니다. 그 역시 가까운 주변의 것들을 사용하고 있지요.
대학원 때는 신발 밑바닥에 공룡을 조각하기도 하고, '우유비누'를 소의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왜 공룡이었느냐 하면, 신발이 화석연료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렇게 되기 이전의 공룡을 새겨 보자고 생각한 겁니다. '우유비누'는 원료 중 하나가 우지니까, 원래의 소의 형태를 조각했고요. 그렇게 해서, 서로 이어져 있는 생명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아주 오랜 옛날에 공룡이 있었고, 그 후에 멸종은 되었어도, 그 생명이 지금 현대에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누가 가치를 결정하는가
대학원 때는 지우개 찌꺼기 작품을 만들지 않았습니다만, 졸업 후에 다시 시작했어요. 족자의 관음보살은 신이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는 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
족자에 그려져 있는 관음보살을 지워서 작품으로. 사용한 지우개는 20개. 족자 선택에서 작품 완성까지 약 6개월 걸렸다.
사진: 나카사이 지야
지우개 찌꺼기로 작품을 만드는 행위에는 가치를 파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폐든 관음보살이 그려져 있던 값비싼 족자든 광고지든, 평면 위에 있던 것은 사라져요. 그리고 그것을 입체로 만들면 똑같은 더스트 작품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가치는 모두 동일한 선상에 있어요. 그것이 기준이라고 할까, 지우개 찌꺼기 작품의 콘셉트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우개 찌꺼기를 가지고 미술 작품을 만듦으로써, 10엔짜리가 100만 엔이 되기도 하지요. 가치의 전환을 꾀할 수가 있어요. 거기에는 누가 가치를 결정하느냐 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지폐로 만든 작품은 아래에서
http://matome.naver.jp/odai/2136941142851635501/2136941495752335003
http://iriesaya.com/web/ntm1.html
http://iriesaya.com/web/pnd2.html
가까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용
나가사키 현 쓰시마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위해 제작했다. 쓰시마의 소주 라벨에 그려져 있는 살쾡이를 지워서 만들었다. 작품의 크기는 그림의 4분의 1 정도이다.
사진: 나카사이 지야
가까운 주변의 것들을 가지고 작품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에 흔히 보던 것이 변화하는 게 재미있으니까요. 2차원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하고 싶어서, 가능한 한 그림과 닮아 보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족자 속의 감이나 새, 술병 라벨의 살쾡이, 우표에 그려져 있는 인물, 책의 삽화 등, 여러 가지를 지워 봤지요. 닮아 보이게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건 사람 얼굴이에요.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관음보살이고, 가장 작은 것은 우표 속 인물입니다. 이건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만드는 게 어렵더군요.
사진: 나카사이 지야
작품이 팔린다는 것
사진: 나카사이 지야
지폐를 사용한 졸업작품은 주목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2012년에 시세이도 아트 에그*에서 입선한 것이 아티스트로서 커다란 전기가 되었습니다. 도쿄에서 열린 시세이도 아트 에그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작품이 팔린 거예요. 작가로서의 출발이었지요.
그 개인전을 본 사람한테서 영국에서의 개인전 의뢰도 받았고, 싱가포르에서의 개인전으로도 이어지는 등,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런던에서는 그때까지 만들던 작품 외에, 파운드 지폐를 지워서 입체로 만든 작품도 전시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의 작은 크기와 세세함에 깜짝 놀랐지요.
2016년에는 한국 부산과 쓰시마의 교류전에서, 한국에서 만든 작품을 쓰시마에 전시했습니다. 그 밖에 싱가포르에서도 4월부터 7월에 걸쳐 전시회를 열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기쁜 일이지요. 그리고 작품이 팔렸을 때, 외부의 반응을 가장 실감해요.
* 시세이도 아트 에그(shiseido art egg): 도쿄 긴자의 시세이도 갤러리가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고자 매년 실시하고 있는 공모 프로그램.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사진: 나카사이 지야
아직은 막연하지만, 영상 작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에 보내 오고 있는 센바즈루(천 마리의 종이학 또는 종이학을 많이 접어서 길게 엮은 다발)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후, 후쿠시마의 특산품인 '아카베코(빨간색의 소 모양으로 만든 향토 인형)'에 종이학을 갑옷처럼 걸쳐 놓고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로 무장한다는 콘셉트였지요. 이것을 좀 더 크게 해서 사람이 입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평화기념자료관에는 전세계에서 수많은 센바즈루가 오고 있는데, 그것을 처리하는 게 문제가 되고 있어요. 최근에는 센바즈루로 만든 재생지로 문방구나 소품 등을 만든 게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품으로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것 역시 콘셉트는 재생이지요.
지우개 찌꺼기 아트 만드는 방법
1.두 종류의 지우개를 사용한다. 하나는 어디서나 팔고 있는 보통 지우개이고, 또 하나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은, NON PVC 라고 쓰여 있는 것. 이 두 가지를 섞으면 느낌이 좋은 지우개 찌꺼기가 된다. "우연히 옆에 있던 것으로 해 봤는데, 잘 되더라고요."라는 이리에 씨.
2.작품의 소재는 잘 지워지지 않는 것과 잘 지워지는 것이 있다. 특히 족자에는 천으로 된 것도 있는데, 천이면 안 지워진다. 잉크제트보다 레이저 잉크가 더 잘 지워진다. 소재에 따라서는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지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3.지우개 찌꺼기를 손으로 이기면 색이 검어지므로, 과학 실험 등을 할 때 쓰는 막자(pestle)를 사용해 이긴다. 형태를 정돈할 때도 가능한 한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4.형태를 정돈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것은 커터 칼, 레이스 뜨개바늘, 바느질 바늘, 이쑤시개 등.
5.완성
사진: 나카사이 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