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피어난 예술
vol.2
코르크로 그리는 인물화
구보 도모노리, 도쿄
2016.08
©You Sung Gil
프랑스 와인 전문점에서 근무하는 소믈리에인 구보 도모노리 씨. 자신의 일을 하면서 코르크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작품을 통해, 와인을 즐기는 풍요로운 방법을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추억이 스며 있는 코르크에 새로운 숨결을
왠지 모르게 갖고 오게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나 축하하는 자리에서 괜찮은 와인을 땄을 때 나온 코르크를요. 코르크에는 와인이 만들어진 연도라든지 만든 이의 이름이 찍혀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다르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해도 그걸 땄을 때의 풍경이 떠오르지요.
た그런데 코르크가 쌓이면 이윽고 둘 곳이 마땅치 않아집니다. 가만 보면, 코르크를 못 버리는 게 저뿐만은 아닌 것 같더군요. 와인을 좋아하는 고객의 집이나 거래처 레스토랑에도 쓸 데가 없어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코르크를 가지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르크 색의 농담을 살려 나폴레옹의 얼굴 완성
©You Sung Gil
병에서 나온 코르크를 보면, 로제 와인의 분홍색이라든지 화이트 와인의 황금색 등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이 색깔의 농담을 이용하면 점묘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레드 와인의 코르크를 본드로 20개 정도 붙여 포도송이를 만들어 봤습니다.
그러다가 사람 얼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면, 더 깜짝 놀라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사실적인 사람 얼굴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크기로 완성해야 하는지, 최소한 몇 종류의 색이 필요한지, 아는 디자이너에게 상의해 봤습니다. 그 계산에 따르면 40열에 60단, 코르크는 색의 농담을 11가지로 나누어 2400개가 있으면 이론상 될 것 같았어요.
자택의 작업실. 코르크가 색깔별로 분류되어 있다.
Photography courtesy of Kubo Tomonori
마침 그 무렵 제가 근무하는 프랑스 와인 전문점에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식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얼굴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장에서는 와인을 판매만 하지 않고 좀 더 잘 즐기실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있거든요.
일이 끝난 후나 주말 시간을 이용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반년에 걸쳐 나폴레옹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식사 모임이 있는 날 나폴레옹의 코르크 작품을 공개했더니, 생각했던 대로 굉장히 놀라시더군요.
프랑스를 사랑한 인물을 선택
9번째 작품인 살바도르 달리 ©You Sung Gil
2014년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0점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달리, 그레이스 켈리, 샤갈 등, 프랑스 사람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사랑했던 인물들을 다루어 왔지요.
그때그때 제가 관심이 있는 인물을 선택해,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사람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코르크가 물감처럼 색깔이 다양한 것은 아닙니다만, 얼굴에 밝은 색의 코르크를 쓸 것인지 어두운 색을 쓸 것인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집니다. 제작 참고용 얼굴 사진을 보면서,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각하지요.
예를 들면, 뉴욕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친 마리아 칼라스는 절세의 가희였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칼라스의 표정은 화가 나 있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행복한 건지 아니면 불행하지만 스스로를 고무하고 있는 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제작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있네요.
©You Sung Gil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를 전하는 상징
작품이 완성되면, 작품을 둘러싸고 식사 모임을 개최합니다. 그 인물에 대해 조사한 내용 등을 말씀드리면서, 그 인물과 관련된 요리와 와인을 즐기시도록 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4월에는 샤갈의 얼굴을 그린 코르크 작품을 둘러싸고 식사 모임을 개최했는데, 그때는 샤갈의 그림 「NICE SOLEIL FLEURS (니스, 태양, 꽃)」에서 영감을 얻은 코스 요리와 와인을 준비했습니다. 니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태양을 느끼게 하는 와인이라면, 이것밖에 없지!" 하는 게 있거든요.
와인과 함께 프랑스의 역사라든지 문화도 즐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코르크 예술이 그런 상징과도 같은 것이 되고 있지요.
와인은 서양으로 이어지는 창
어렸을 때 저에게 와인은 서양으로 이어지는 창이었습니다. 일본의 포도와 와인 산지인 야마나시에서 자랐지만, 프랑스의 와인을 동경했어요. 라벨도 일본의 것과 달랐지요. 와인 너머로 프랑스의 풍경, 베르사유 궁전 같은 호화찬란한 건축물, 수백 년을 전해져 온 석조 건물 등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이 일에 몸담은 이후, 매년 프랑스까지 와인을 수매하러 가고 있어요. 제가 수매한 와인이 매장에 도착하여 고객분에게 추천할 때는, 만든 이들의 얼굴과 이야기와 풍경 등이 떠오릅니다. 고객분에게 그런 이야기도 전해 드리고 있지요.
©You Sung Gil
와인의 재미는 다양성에
소믈리에가 된 지 딱 15년이 지났습니다. 예전에는 소믈리에가 아니면 몰랐을 법한 와인 관련 지식도 최근에는 누구나 인터넷으로 금방 찾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모르는 언어로 쓰여 있더라도 번역 도구를 이용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 10년 사이에 소믈리에의 역할도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 자신도 소믈리에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숙고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참이에요.
예를 들면 와인과 함께 프랑스의 역사나 문화를 즐기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소믈리에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의 일본, 특히 도쿄에서는 전 세계의 어떤 물건이든 바로 구할 수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수입 와인이라 하면 아무래도 브랜드나 가격만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저는 와인의 재미는 다양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각각 다른 기후 조건 아래서, 비록 좋은 포도를 수확하지 못해 와인 만들기가 어려운 해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매년 만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와인은 만든 이의 손을 떠난 다음부터 변화합니다. 대부분의 음료는 일단 제품으로 완성되면 언제 어디서 마시든 맛이 똑같은 게 보통이잖아요. 그렇지만 와인은 유럽에서 지구 반대편의 아시아까지 오는 동안도 그렇고 병 안에서 좀 더 숙성되는 동안에 맛이 변해, 독특한 풍미가 생깁니다. 여기에는 아무리 편리해졌다 하더라도 단축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있어요.
원래 유리병에 코르크 마개를 해서 보존할 수 있게 된 건 와인의 오랜 역사로 볼 때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과거 유럽의 수렵 문화에서는 어떤 사냥감을 잡을 수 있을지 미리 알 수 없었고 먹을거리도 그냥 자연이 주는 대로였지요. 그래서 그날의 먹을거리에 맞춰 함께 마시면 맛이 있을 와인을 골랐던 게 소믈리에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와인을 마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와인을 소개해 온 게 소믈리에예요. 그렇기 때문에 소믈리에로서, 와인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상황과 식재료에 맞춰 즐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요리라 하더라도 일본에서 만들어질 때는 일본의 식재료를 사용하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요리인데요. 그 일본 요리하고 프랑스 와인을 조화롭게 맞춘다 하는 것은 식탁 위에서 국제 교류가 행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의 재미를 전하는 것도 소믈리에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You Sung Gil
자연과 공생해 온 프랑스 그리고 일본
생각해 보면, 와인을 그저 밀폐하기 위한 거라면 코르크가 아니어도 될 것입니다. 스크류캡이든 유리 마개든 상관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300년 동안 계속 코르크를 사용했습니다.
틀림없이 거기에는 자연과 함께여야 한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프랑스 요리와도 통하는 생각이라고 봐요. 프랑스 요리도 환경의 균형을 위해 사냥감을 지나치게 잡지 않을 것, 뼈와 가죽 등을 버리지 말고 다 사용할 것 등, 자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알게 된 재미있는 것이, 일본 사람들도 옛날부터 가능한 한 쓸데없이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아끼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이불 속에 들어 있는 솜을, 이불이 점점 낡아지면 조그맣게 만들어 방석으로 쓰고, 마지막에는 게타(일본 나막신)의 끈으로 썼다고 해요.
그렇게 생각할 때, 제가 코르크로 이런 것을 만든 것은 프랑스와 일본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인공물보다는 코르크 같은 천연의 나무나 가죽의 촉감을 더 좋아하는데, 이것이 어린 시절에 자연이 풍부한 야마나시 현에서 자란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코르크에 스며든 와인의 색은 천연의 색이기 때문에, 코르크 예술 작품은 점차 색깔이 바래어 갑니다. 첫 번째 작품인 나폴레옹은 슬슬 머리카락의 색깔이 연해졌어요. 하지만 탈색 방지제를 바르지는 않습니다. 와인에 마시기 가장 좋은 시기가 있듯이, 코르크 예술 작품에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프랑스와 관련 있는 인물만을 다루었지만, 언젠가는 우키요에(에도 시대에 주로 목판화로 제작된 민화)와 같이 일본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공개하는, 일본과 프랑스의 문화 교류를 위한 행사도 열어 보고 싶군요.
©You Sung Gil
【Interview: April, 2016】
Writer: Yamagishi Hayase